앨범 리뷰: Denzel Curry – Melt My Eyez See Your Future

2025. 6. 3. 23:34음악/음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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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과시와 에너지로 움직이는 힙합 씬 속에서, Denzel Curry의 Melt My Eyez See Your Future는 그 흐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앨범은 2022년에 발매된 그의 전환점 같은 작품이다. 과거의 광기와 모쉬핏의 에너지를 뒤로하고, 보다 내면적이고 영화적인 감각을 갖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Denzel Curry - Melt Session #1

첫 곡 “Melt Session #1”에서부터 이 변화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Ultimate*이나 *TA13OO 시절의 분노와 폭발력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차분해진 목소리와 성찰적인 가사가 등장한다. “Melt my eyez”라는 후렴은 주문처럼 반복되며, 거짓 없이 세상을 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드러낸다. 때로는 진실이 고통스러울지라도.

프로덕션 역시 그 변화의 흐름을 따른다. Kenny Beats, Robert Glasper, Thundercat, Karriem Riggins 등 재즈와 네오소울에 기반을 둔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덕분에, 전체적으로 아날로그 감성과 여유가 느껴지는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예전처럼 빡센 트랩 비트가 아닌, 감정의 여백이 살아 있는 질감이다.

 

Denzel Curry - Walkin

가사에서도 변화가 느껴진다. “Walkin”, “Mental” 같은 곡에서는 회복력, 자기 의심, 구조적 폭력의 그림자에 대해 묵직하게 이야기한다. 이제 Curry는 단순한 스토리텔러를 넘어서, 자기 자신을 분석하고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역할을 한다. T-Pain이 참여한 “Troubles”는 경쾌함 속에 내면을 담았고, “The Last”는 선언이자 기도처럼 들린다.

 

Denzel Curry - Troubles

흥미로운 건 이 앨범이 개인적인 이야기와 정치적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내면서도, 과하게 교조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Curry는 과장 대신 솔직함으로 말한다. 때로는 짧은 망설임, 단어 선택 하나, 가사 사이의 숨소리 같은 아주 작은 디테일에서 진심이 전해진다. 더 이상 외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게는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나온다.

사운드 면에서도 과장은 없다. 소울풀한 리듬, 재즈적인 선율, 로우파이한 질감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그는 다양한 플로우와 어조를 실험한다. 전통적인 힙합의 감성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동시대적인 세련미를 놓치지 않는다. 전곡이 하나의 서사처럼 이어지는 구성은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은 통일감을 준다.

빠른 속도와 자극에 몰두하는 지금의 음악 환경 속에서, Melt My Eyez See Your Future는 느리고 깊은 울림을 선택한다. 성장 서사이자, 자아 탐구이자, 하나의 선언문 같은 이 앨범은 단지 커리어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Denzel Curry라는 아티스트의 도착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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