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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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리뷰: Denzel Curry – Melt My Eyez See Your Future
늘 과시와 에너지로 움직이는 힙합 씬 속에서, Denzel Curry의 Melt My Eyez See Your Future는 그 흐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앨범은 2022년에 발매된 그의 전환점 같은 작품이다. 과거의 광기와 모쉬핏의 에너지를 뒤로하고, 보다 내면적이고 영화적인 감각을 갖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Denzel Curry - Melt Session #1첫 곡 “Melt Session #1”에서부터 이 변화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Ultimate*이나 *TA13OO 시절의 분노와 폭발력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차분해진 목소리와 성찰적인 가사가 등장한다. “Melt my eyez”라는 후렴은 주문처럼 반복되며, 거짓 없이 세상을 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드러낸다. 때로는 진실이 고통스러..
2025.06.03 -
앨범 리뷰: Weyes Blood - And In The Darkness, Hearts Aglow
어떤 앨범은 새벽 두 시에 혼자 누워 천장을 바라보거나 창밖을 멍하니 보게 만들곤 한다. Weyes Blood의 And In The Darkness, Hearts Aglow는 바로 그런 앨범이다. 몽환적이고 감정의 결이 깊은 이 작품은 오래된 시대에서 온 듯한 분위기를 지니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감각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Weyes Blood는 나탈리 머링(Natalie Mering)의 프로젝트다. 그녀의 음악을 처음 접한다면, 1970년대 포크 팝의 감성을 떠오른다. 카렌 카펜터(Karen Carpenter)나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며, 현대의 혼란과 아름다움을 시처럼 기록한 음악을 들려준다. 전작 'Titanic Rising' 이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었다..
2025.06.03 -
앨범 리뷰: Fiona Apple - Fetch the Bolt Cutters
피오나 애플의 『Fetch the Bolt Cutters』: 날것 그대로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선언2020년 4월, 세상이 멈춰버린 듯한 그 시점에 피오나 애플은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다섯 번째 정규 앨범 Fetch the Bolt Cutters는 거의 8년 만에 발표된 신작임에도, 긴 공백의 무게를 감춘 채 마치 한 줄기 짐승의 외침처럼 음악계를 뒤흔들었다. 지나치게 연마된 팝 사운드와 철저히 계산된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이 앨범은 오히려 낯설 만큼 솔직하고, 거칠고, 해방적이다.앨범은 그녀의 베니스 비치 자택에서 대부분 녹음됐고, 그 안엔 집 안 곳곳의 소리들이 녹아 있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컹컹 짖는 개들, 그리고 식탁과 가구를 두드려 만든 리듬들. 그녀..
2025.05.27 -
앨범 리뷰: This Is Why – Paramore
포스트펑크 전환과 서른 즈음의 카타르시스5년이라는 공백기, 그동안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탐색하고 쉼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Paramore가 돌아왔다. 이번엔 After Laughter 의 팝적 반짝임도, Riot! 의 감정적 폭발도 아니다. This Is Why는 훨씬 더 날카롭고 조밀하며, 무엇보다도 조심스럽다.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 그리고 무력한 분노를 담은 이 6번째 정규 앨범은, 지금까지의 Paramore 중 가장 성숙하고 집중력 있는 결과물일지도 모른다.이건 무턱대고 새로움을 좇는 변신이 아니다. Paramore는 이제 나이를 먹었고, 이 세계를 새롭게 직시해야 했으며, 동시에 자신들의 과거를 껴안아야 했다. 그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 이 앨범은 포스트펑크, 댄스펑크, ..
2025.05.24 -
앨범 리뷰: Ants from Up There – Black Country, New Road
Black Country, New Road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백조의 노래Ants From Up There는 그 자체로 모순을 안고 태어난 앨범이다. 블랙 컨트리, 뉴 로드(Black Country, New Road)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자, 프론트맨 아이작 우드가 정신 건강 문제로 탈퇴를 선언한 직후 발매된 이 작품은, 절정으로 치닫다 끝내 도달하지 못한 어떤 장대한 감정의 잔향처럼 남는다. 약속과 끝맺음이 공존하는 순간, 이 앨범은 그렇게 전설이 되기 시작했다.데뷔 앨범 For the First Time이 포스트펑크, 클레즈머, 난해한 낭독으로 이루어진 혼란의 유희였다면, Ants From Up There는 훨씬 더 멜로디 중심적이고 감정적으로 정제된 그의 자매 같다. 실험적인 날카로움은 줄어들었..
2025.05.23 -
앨범 리뷰: Jessie Ware – What’s Your Pleasure?
Jessie Ware – What’s Your Pleasure?황홀한 디스코로의 우아한 귀환2020년 6월, What’s Your Pleasure? 는 어두운 시기를 뚫고 반짝이는 미러볼처럼 등장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제시 웨어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은 단순한 음악적 변신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면적인 재탄생에 가까웠다. 이전의 내밀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벗어던지고, 땀과 관능이 어우러진 무도회장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간 것이다.이미 웨어의 디스코그래피에 익숙한 이라면, 이 앨범이 새롭지만 동시에 낯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데뷔작 Devotion이나 Tough Love에서 들려주던 소울풀하고 미니멀한 사운드에서 벗어나, 이번 작품은 화려하고 볼륨감 넘치는 디스코의 세계로 깊숙이 빠져든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
2025.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