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리뷰: This Is Why – Paramore

2025. 5. 24. 11:31음악/음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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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펑크 전환과 서른 즈음의 카타르시스

5년이라는 공백기, 그동안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탐색하고 쉼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Paramore가 돌아왔다. 이번엔 After Laughter 의 팝적 반짝임도, Riot! 의 감정적 폭발도 아니다. This Is Why는 훨씬 더 날카롭고 조밀하며, 무엇보다도 조심스럽다.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 그리고 무력한 분노를 담은 이 6번째 정규 앨범은, 지금까지의 Paramore 중 가장 성숙하고 집중력 있는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이건 무턱대고 새로움을 좇는 변신이 아니다. Paramore는 이제 나이를 먹었고, 이 세계를 새롭게 직시해야 했으며, 동시에 자신들의 과거를 껴안아야 했다. 그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 이 앨범은 포스트펑크, 댄스펑크, 얼터너티브 록의 영향을 품되, 철저히 Paramore다운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긴장으로 쌓아올린 사운드

This Is Why - Paramore

타이틀 트랙 “This Is Why”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헤일리 윌리엄스는 "This is why I don’t leave the house(그래서 난 집 밖을 안 나가)/ You say the coast is clear(너는 괜찮다 말하지만)/ But you won’t catch me out(난 안 속아)"라고 노래하며, 냉소와 피로감을 교차시킨다. 기타는 불안하게 휘감기고, 드럼은 절도 있게 긴장을 유도한다. 더 이상 큰 후렴구나 장대한 멜로디에 집착하지 않는다. 지금 이들의 관심은 구조, 리듬, 그리고 불편한 감정 그 자체다.

 

The News - Paramore

“The News”와 “C’est Comme Ça”는 분노에 찬 에너지로 질주한다. 특히 “The News”는 현대인의 과잉 정보 소비에 대한 자조적인 응시다. “I can’t look away (눈을 뗄 수가 없어)” 라며 반복하는 가사는, 듣는 이를 진짜로 숨 막히게 만든다. 이 곡은 '과잉 자극'에 대한 곡이면서 동시에, 그 자극 자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앨범은 단순한 날카로움으로만 채워지진 않았다. “Liar”나 “Crave” 같은 트랙은 노이즈를 걷어내고, 보다 섬세하고 정제된 정서를 담는다. 불안을 드러내는 방식이 꼭 고함만은 아님을 증명하는 순간들이다.

 

재배치된 중심, 헤일리 윌리엄스

예전의 Paramore가 정체성과 상처, 반항을 노래했다면, This Is Why는 훨씬 더 존재론적이다. 헤일리 윌리엄스는 여전히 중심에 있지만, 그 방식이 달라졌다. 더 이상 감정을 쏟아붓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해부하고, 회의하고, 기묘한 리듬과 불규칙한 멜로디 안에 밀어넣는다.

Running Out of Time - Paramore

“Running Out of Time”에선 일상의 불안함을 유머로 비튼다. “ I ran out of time(시간이 없었어)/ I blame the traffic (교통체증 때문이야)”라며 웃픈 자기합리화를 읊조린다. 실없는 말 같지만, 공허한 삶의 단면을 찌르는 절묘한 표현이다. “Figure 8”에선 속삭이다가 비명을 지르듯 휘몰아치며 강박적인 내면의 고리를 반복한다.

재밌는 건 윌리엄스의 존재감이 압도적인데도, 이 앨범은 오히려 밴드 전체가 가장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세 사람 모두 하나의 방향을 향해, 균형을 맞추며 나아간다.

 

젊음을 내려놓고 말하는 용기

This Is Why는 젊음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른이라는 나이, 붕괴 중인 세계 속에서 감정이 식은 채 살아가는 일상을 담담히 고백한다. 무언가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혼란을 기록하고, 좌절을 수용하고, 계속 살아가는 그 자체가 메시지다.

놀라운 건 이 모든 변화를 이토록 단단하게 수행한다는 점이다. 장르를 마구 넘나들며 혼란스럽게 만들지도 않고, 옛 향수를 자극하는 것도 아니다. 세공된 듯한 구성과 정제된 감성,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Paramore가 도달한 ‘진짜 성장’이다.

 

총평

This Is Why는 재창조라기보다는 정제의 결과다. Paramore는 지금 가장 통일감 있게, 가장 의식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앨범은 날카롭고,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적으로 깊다. 어디 하나 헐겁지 않은 구성이면서도, 숨 쉴 틈을 허락한다. 수많은 소음 속에서 드물게 만나는, 사려 깊은 록 앨범이다.

평점: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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