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리뷰: Fiona Apple - Fetch the Bolt Cutters
피오나 애플의 『Fetch the Bolt Cutters』: 날것 그대로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선언
2020년 4월, 세상이 멈춰버린 듯한 그 시점에 피오나 애플은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다섯 번째 정규 앨범 Fetch the Bolt Cutters는 거의 8년 만에 발표된 신작임에도, 긴 공백의 무게를 감춘 채 마치 한 줄기 짐승의 외침처럼 음악계를 뒤흔들었다. 지나치게 연마된 팝 사운드와 철저히 계산된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이 앨범은 오히려 낯설 만큼 솔직하고, 거칠고, 해방적이다.
앨범은 그녀의 베니스 비치 자택에서 대부분 녹음됐고, 그 안엔 집 안 곳곳의 소리들이 녹아 있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컹컹 짖는 개들, 그리고 식탁과 가구를 두드려 만든 리듬들. 그녀는 세공하지 않은 날것의 사운드 속에 고도의 직관과 의도를 담아냈다. 모든 흔들림엔 이유가 있고, 모든 불협화음은 의도적이다.
앨범 제목은 영국 범죄 드라마 The Fall 에서 따온 대사다. “볼트 커터 좀 가져와. 필요하겠어.” 피오나는 이 문장을 하나의 외침으로 바꿔버린다. ‘Fetch the bolt cutters’는 감정의 억압, 사회적 틀, 음악 산업의 관습 그리고 자기 자신이 만든 감옥에서 탈출하겠다는 선언이다. 벽을 부수겠다는 강한 의지다.
규칙을 해체하고 새로 짓다
이 앨범의 음악적 구조는 자유롭고 예측 불가하다. 전통적인 장르 구분은 무의미하다. 아방가르드 팝, 아트 록, 재즈, 스포큰 워드, 그리고 생활 소음이 한데 얽혀 있다. 오프닝 트랙 ‘I Want You to Love Me’는 부드러운 피아노로 시작하지만, 곧 원초적인 절규로 이어진다. ‘Under the Table’은 단호하면서도 익살맞다. “식탁 밑에서 날 걷어차 봐 / 그래도 난 입 다물지 않아.”
앨범의 중심은 타악기이다. 그런데 드럼 세트 대신 식기, 벽, 의자 등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Relay’나 ‘Drumset’ 같은 곡은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가 넘친다. 이건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곡이라기보단, 창작의 순간이 그대로 담긴 음성 일기 같다.
보컬도 만만치 않다. 속삭이고, 노래하고, 울부짖고, 비명을 지른다. 어떤 곡에선 이 네 가지가 모두 나온다. 애플은 감정보다 기술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녀에겐 완벽함보다 진짜가 더 중요하다. 듣는 이로 하여금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솔직한 감정에 직면하게 만든다.
분노, 기억, 그리고 여성 연대
가사엔 분노가 녹아있고,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무겁게 내려앉지 않는다. Fetch the Bolt Cutters는 철저히 1인칭 시점이지만, 그 목소리는 더 큰 무리의 경험을 대변한다. ‘Shameika’는 어린 시절 따돌림 속에서 “넌 가능성이 있어”라고 말해줬던 친구의 한마디를 꺼내든다. 단순한 회상 같지만,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린다. 애플은 이렇게 사소한 기억들을 영혼의 핵으로 끌어올린다.
‘Ladies’는 여성들 사이에 조장된 가짜 경쟁 구도를 해체한다. “우린 모두 누군가에겐 ‘하나뿐인 사람’이었고, 또 다른 이에겐 ‘그 외의 사람’이었지.” 이 가사는 다정하지만 날카롭다. 그녀는 훈계하지 않는다. 대신 관통하는 통찰을 조용히 건넨다.
앨범 곳곳에 들리는 개 짖는 소리도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다. 이들은 혼돈이고, 위로이며, 합창이다. 완벽하지 않은 세상의 리얼리티이자, 감정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존재로 기능한다. 이 앨범에선 개도 목소리를 낸다.
부수고, 뚫고, 앞으로 나아가다
이 앨범은 절대 ‘편안한 음악’이 아니다. 배경음악으로 두기엔 너무나도 강렬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는 감정이 넘쳐난다. 때론 거칠고, 때론 불안정하며, 때로는 듣는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진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피오나 애플의 최고작으로 꼽는다. 어떤 이는 2010년대의 최고 앨범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Fetch the Bolt Cutters는 듣는 이에게 조건을 내건다. 내 기준으로 들어달라고, 내 언어로 말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결과는 경이롭다.